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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화(紙花), 향(香) 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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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화(紙花)로 선승의 도(道)가 깊어간다. ‘삼사일언(三思一言)’이라 말하는 석용의 가르침은 해를 지나 향을 더했다. 2014년 석용은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에서 겸손한 미소를 보였다. 종이로 형상된 꽃이 출가한 고승의 마음을 짐작하게 한다. 진흙에서 진주가 돋보이듯, 석용의 꽃은 중생을 향해 내던지는 해답일 수 있다.

선(線)을 넘어야 하는 건 중생(衆生)

더럽고 추한 곳에서는 피는 연꽃은 득도한 선승, 불자를 상징한다. 의미를 되새기면 석용의 작품이 다르게 보인다. 수없이 손이 간 종이 하나하나에 불가의 가르침이 담겼다. 비단 불교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의 의미, 추구하는 바가 지화에 스몄다. 그러기에 작품에 정성이 가득하다.

올해 석용은 국회 의원회관 한쪽에 작품을 전시했다. 사찰이 아니라 의아함이 든다. 누군가 불러서 갔다기보다 서로의 끌림, 인연이 닿았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얘기가 석용과 작품, 행인 사이에 맴돈다.

한데, 발걸음이 바쁜 그곳에서 지화는 눈길을 끌지 못한다. 마음에 여유가 없고 급박한 사정이 있어서다. 때문에 지나는 사람과 꽃의 사이에 무형의 경계가 서린다. 선(線)을 넘어야 하는 건, 역시 중생(衆生)이다.

지(紙)보다 질긴 삶

우연히 지나다 만난 지화에 보살의 형상이 겹친다. 속세에 속한 행인과 다른 경계에 선 선승은 종이꽃으로 연결된다. 중생을 보듬어 구도에 이르게 하는 과정, 꽃을 매만지는 마음에 간절함이 있다. 깨달음에 다가서는 이들에게 지화는 궁극(窮極)이다. 눈길에 생각을 담고 작품을 향하면 구도의 의미가 드러난다.

석용에 따르면, 온전한 작품 모두 사람의 손길이 닿았다. 어느 곳 하나, 저절로 이뤄진 게 없다. 물들인 종이와 꽃의 주름 하나하나가 시간을 짐작하게 한다. 천연의 색이 스며든 종이, 이를 꽃으로 만든 성의(誠意), 작품으로 완성되는 열정은 구도의 험난함과 고단함을 대변한다.

치자와 머루로 색을 낸 종이가 형상을 띠기 전까지, 만드는 이가 아니고서 가늠하기 어렵다. 시간이 지나고, 정성이 담기고, 수많은 손이 간 뒤에야 비로소 추상은 구체로 변한다. 작품을 담는 나무부터 지화를 매다는 가지까지 어느 한 부분도 생(生)을 소진하지 않았다.

사람과 꽃, 꽃과 종이, 유생(有生)과 무생(無生)의 사이에서 도(道)는 깊어진다. “꽃같이 아름다운 인연”이라했던 석용, 선승의 비유는 적절함을 넘는다. 연꽃같이 아름다운 사람, 지(紙)보다 질긴 삶, 인연과 우연한 기로에서 중생은 방향을 잡는다. 시선과 나아가는 발걸음이 같은 곳을 향한다.

영겁의 자연, 지켜보는 ‘지화’

본래 석용은 지화보다 영산제(靈山齊)로 기억된다. 중생의 관심이 행사에 쏠려서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봉원사 영산제에서 석용의 재능이 피어난다. 장엄(莊嚴)에서 그의 손길이 닿으면 전통의 복원이 이뤄진다. 무형으로 이어진 솜씨의 극(極)은 석용의 감로탱화 재현에서 볼 수 있다. 수많은 꽃송이를 종이로 접으며 구도의 길을 가는 선승, 그 전통은 천 년의 세월을 견뎠다.

올해도 지화는 추운 날씨에 빛을 발했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아름다움을 간직한 지화, 굳은 절개의 사군자 이미지가 겹치는 건 이 때문이다. 매서운 추위에서 꽃을 피우는 매화, 인적이 드물어도 향을 내뿜는 난(蘭), 만개한 형상으로 사람을 이끄는 국화, 곧은 줄기로 현답을 던지는 대나무가 지화에 담겼다.

향(香)으로 나비를 끈다는 생화와 달리, 지화는 중생의 마음을 이끈다. 하나의 장식으로 치부하기에는 의미의 깊이가 다르다. 자연의 변화를 담지는 못하나 지화에는 영고(榮枯)의 세월이 스민다. 한때를 꾸미는 생화, 영원함을 추구하는 지화, 중생에게 등대로서 다가서는 건 종이꽃일 수 있다.

달리 보면, 넓은 자연의 이미지와 깊은 종이꽃의 의미가 시간의 상대성을 나타낸다. 고난의 시간은 영원하고 기쁨은 찰나다. 영겁을 반복하는 자연, 순간을 살아가는 중생, 이를 지켜보는 지화의 모습이 상대적이다. 나와 당신, 그리고 다른 이로 표현되는 중생과 자연, 지화가 현생(現生)을 살아간다. 선승의 눈에 비치는 이들은 매한가지다. 모두가 관계를 맺고 끊으며 결국 시간에 묻힌다. 이들을 이끌어야 할 몫은 어찌 보면 불가의 가르침에 있다.

스쳐간 인연, 침묵하는 지화

지나다 시선이 멈춘 지화에서, 성인(聖人)의 다른 모습이 떠오른다. 스쳐 간 인연과 다가올 우연, 이런 매듭을 종이꽃은 기억에 담는다. 회자하는 성인의 진리가 지화에 엿보이는 순간, 하나의 깨달음이 얻어질 수 있다.

시간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말, 그 의미는 지화에게 달리 전달된다. 지화는 묵묵부답이다. 형상만으로 답을 내던지는 종이꽃, 자연의 변화를 뒤로한 지화가 때로 시간을 넘는다. 무언의 유의미, 석용의 꽃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석용과 지화, 이를 지나친 중생은 올해도 빛을 발했다. 그 빛은 종이꽃의 침묵에서 더욱 밝았다.

조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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