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SeMA 해외순회전…안상수의 삶-글짜

<안상수의 삶-글짜>展은 2017년 3월에 개최되었던 SeMA Green <날개.파티>展의 해외순회전으로, 대만 타이페이에 위치한 사립디자인 및 교육기관인 슈에슈에재단 초청으로 성사되었다. 작년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전시에서는 ‘안상수’라는 한국의 대표적인 디자이너가 만들어 온 한 시대의 활동과 디자인 세계를 문자 작업을 중심으로 조망하고, 동시에 현재 진행 중에 있는 디자인 프로젝트로서의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가 만들어 온 5년의 기록을 함께 소개하였다. 전시가 한창 진행 중이던 시기에 전시장을 직접 방문한 슈에슈에재단의 전시와 프로그램 기획팀은 이후 양 기관 간에 협약서를 체결하고 이번 전시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협력과 환대의 교류를 일 년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이번 전시 개최에 이르게 되었다.

SeMA 해외순회전 <안상수의 삶-글짜>
2018. 3. 15.(목) – 2018. 6. 20.(수)
대만 슈에슈에재단 7층 백색공간, 2층과 10층 부분설치
설치, 영상, 드로잉 등 30여 점
11:00 – 18:00 / 휴관일 없음

작가와의 대화 : 2018년 3월 18일 일요일 오후 2시

이번 대만에서의 순회전은 디자이너 안상수에만 집중하고, 그의 다양한 작업들을 소개한다. 변함없이 ‘문자’의 세계를 중심으로 각종 형태와 방법을 실험중인 그의 작품 세계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는 이처럼 끊임없는 창작의 진행 과정에 위치하며, 신작 <도덕경> 도자기 타일 설치 작업을 포함하여, 안상수체의 모더니즘이 다시 전통을 만나 지금의 현재의 시점으로 돌아 온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 <홀려라> 시리즈, 2002년 로댕갤러리 개인전에서 처음 선보여서 이후 여러 전시 공간에 맞춰 지속적으로 변형중인 <알파에서 히읗까지>, 여전히도 실험적이고 항상 당돌한 안상수 디자인의 놀이터 <보고서보고서> 시리즈, 늘 한글이 주인공이었던 각종 포스터 작업, 문자도 6채널 동영상 설치 등을 통해 다양한 시간의 축을 아우르며 그의 디자인 세계가 구축해 온 감각과 생각을 조망해본다.

안상수의 디자인 세계가 꾸준히 말해온 문자의 수행성, 한글실천, 유희성 등의 성격은 여전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하는 지점은 전시 제목이 말하는 대로 ‘삶’이다. 이 고백에 가까운 제목은 흡사 사랑에 가깝다. ‘글짜’를 사랑하고, 글자 외의 범주에서 ‘글짜꼴’을 만드는 방법을 사랑하는 그에게 사랑은 삶이고 또 ‘살림’이다. ‘살아있는 글짜’를 만들듯이 살아있는 학교를 만들고, 삶 속에 살아있는 디자인과 ‘디자인하기’를 꿈꾸는 그에게 있어서 결국 디자인이란 ‘삶을 스스로 이끌어가는 새로운 주체를 만들어내는 동력’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과정을 형상화하는 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디자인이다.

슈에슈에재단이 커미션한 새 작업 <도덕경> 타일 설치는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에서 처음 선보였던 한글 타일 작업의 새로운 버전이다. 2011년 제4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총감독 승효상)가 노자 도덕경의 첫 문구를 딴 제목 <도가도비상도 圖可圖非常圖>을 바탕으로 주제를 설정했고, 당시 비엔날레 로고타입 디자인을 맡고 초청 작가이기도 했던 안상수는 이 노자의 철학에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대입한 일종의 공식을 도출해낸다.

비엔날레 로고에서 d는 디자인, D는 우리가 디자인이라 생각하는 디자인, 그리고 ㄷ은 비엔날레를 통해 다시 디자인이라 불리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디자인이라고 칭하는 것은 디자인이 아니다’라는 뜻을 전하는 로고타입은 지금껏 우리가 디자인이라 생각해오던 그것과는 다른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겠다는 그의 의지를 뜻하고, 이 ‘다름’이라는 주제는 한자의 환경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 한글 정신의 기본이자, 그의 생애에 걸친 디자인 주제이며, 삶에 대한 결의이며, 인생의 표지판이다. 대만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도덕경> 타일 작업은 이 로고타입에서 표현한 지점을 더욱 심화시키고, 여기에 중국어와 한글의 두 문자 체계나 특성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도덕경> 중국어 타일은 최소한의 구분점을 통해 상형 문자의 의미 기호체계로서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그 작문 스타일을 해치지 않는 배치법으로 디자인 되었다. 그리고 <도덕경> 한글 타일은 ‘안상수체’에서 이미 해체시킨 네모의 틀 밖에서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 자유롭게 노자의 소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렇게 문자의 깊은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안상수는 <도덕경>의 첫 구절, 언뜻 쉽게 이해할 수만은 없는 그 개념을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버틸 수 있는 물질인 도자기 위에 새긴다.

슈에슈에재단 2층 전시장에 위치한 키친 랩 내벽에는 생명평화무늬가 벽화로 설치된다. 2004년 생명문화포럼을 위한 심볼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은 안상수는 네발짐승, 물짐승, 날짐승과 같은 ‘생명’의 이미지에 ‘식물’을 더하고 사람과 하늘을 더해 주역周易의 원리인 천지인天地人 순서로 이 무늬를 디자인했다. 이러한 창작의 방식은 한자 구성 원리 중에 뜻을 모아 새로운 뜻을 만들어내는 ‘회의會意’에 해당하는 일종의 추상화를 도출하는 방식과 유사하며, 달리 표현하면 이미 존재하는 어떤 의미를 ‘발견’하여 새로운 약속 혹은 기호를 만들고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심볼은 일종의 암호이고, 암호는 글자의 한계로만 소통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교류의 방식이다. 이 무한한 감각 교류로서의 ‘미디어’가 되는 문자, 그리고 이러한 감각 체계가 바탕이 되는 ‘디자인’이 바로 안상수가 전하고자 하는 ‘살아있는 문짜’일 것이다. 대만과 슈에슈에재단의 관객들이 안상수의 디자인을 통해 언어와 문화의 한계를 넘어선 공통의 감각을 함께 나눌 수 있게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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