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한국자수박물관 유물 5,000여점 ‘서울공예박물관’ 기증

한국자수박물관의 허동화, 박영숙 부부가 평생에 걸쳐 수집한 소장유물 4,241건(5,129점)을 서울시에 무상 기증하기로 했다.

집중적으로 수집했던 자수병풍, 보자기 등 1천여 점 비롯해 자수공예 및 복식 등 각종 직물공예품, 장신구, 함, 바늘과 같은 침선구를 망라한다. 국가지정 보물 제653호인 4폭 병풍 <자수사계분경도>와 국가민속문화재 3건도 포함돼 있다.

기증 유물 일체는 서울시가 옛 풍문여고에 건립 중인 ‘서울공예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겨 오는 2020년 5월부터 상설 및 특별전시를 통해 전면적으로 공개된다. 기존 자수박물관의 물리적 한계로 만나보기 힘들었던 전시를 일반 시민 누구나 만나볼 수 있게 되는 것. 강남구 논현동 박영숙 원장의 치과 옆에 자리했던 한국자수박물관은 전시공간이 협소해 5,000여 점에 이르는 수집 자수 문화재를 한 번에 전시할 수 없었다.

한국자수박물관은 허동화 관장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박물관’으로 칭하며 열정을 다해 운영, 1970년대 이후 지난 반세기 동안 자수라는 한국전통문화를 알리며 국내외에 명성을 떨쳐왔다. 박물관 설립자이자 허 관장의 부인인 박영숙 원장은 치과를 운영하며 경제적인 뒷받침을 아끼지 않았다.

허동화 관장(1926년생, 만91세)은 육군 소령으로 예편 후 한국전력 감사직을 맡았다. 평소 자수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부인 박영숙의 영향과 1970년대 초부터 당시 한국 민화 연구자이자 민중박물관 건립 운동을 주도했던 조자룡 선생의 조언을 통해 도자기, 회화 등 일반적인 고미술품 수집이 아닌 자수 병풍, 보자기를 수집해 소장 분야를 특화했다.

설립자 박영숙 원장(1932년생, 만86세)은 평양 출신으로 이화여고, 서울대학교 치의예과를 졸업했다. 1955년 허동화 관장과 결혼 후 치과를 개업해 평생 동안 허 관장의 자수 유물 수집과 한국자수박물관 설립에 지대하게 공헌했다. 수집한 다듬잇돌 등 침선용구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여 1997년 국민훈장동백장을 받기도 하는 등 우리 사회에도 뜻깊은 기여를 해왔다.

한국자수박물관은 작은 사립박물관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11개국(영국, 프랑스, 벨기에, 미국, 터키, 독일, 호주, 이태리, 뉴질랜드, 스페인, 일본)에 우리의 여성자수공예문화를 알려왔다. 1만여 명이 관람한 1979년 일본 도쿄 전시 이후 최근까지 해외전시만 55회가 열렸다. 국내 전시까지 포함 하면 총 전시는 총 100여 회가 넘는다.

해외 전시의 경우 대부분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로서의 자수문화에 주목, 공식 초청해 열린 전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최근까지 개최한 단독 국외 전시가 31회인 것과 비교하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박물관’이 거대한 성과를 이룬 셈이다.

이번 기증은 허동화 관장이 국가사회 공헌에 뜻을 두고 서울시에 제안해 이뤄지게 된 것으로 현재 노환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허 관장은, “한국자수박물관 소장 유물 기증을 계기로 그 반백년 감동의 역사가 서울공예박물관을 통해 계승되고, 다른 유물 소장가들에게는 기증의 선례가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이번 자수 유물 기증을 우리나라 박물관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사례로 보고, 향후 우리나라 자수공예 역사를 심층적으로 연구하는데 학술적으로 중요한 근거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허동화 관장은 1970년대 말 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장의 권유로 1978년 6월부터 8월까지 국내 최초로 전통 자수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알리는 <박영숙 수집 전통자수 오백년> 전시를 개최했다. 개인 소장가로서는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 수집한 청자에 이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한 두 번째 전시였다. 당시 15만여 관람객이 다녀가 대성황을 이뤘고, 우리 전통 자수의 가치에 새롭게 눈을 뜨는 계기를 마련했다.

1978년 국내 전시의 인기에 힘입어 1년 뒤인 1979년 여름 일본 도쿄 한국문화원 개원식에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재로 특별전을 열었다. 이때 보물 제653호 <자수사계분경도>를 비롯한 국가 지정문화재 등 72점을 전시해 1만여 명의 재일교포, 일본인 등이 관람했다. 특히, 『일본서기』에 백제의 자수 문화가 일본에 전해졌다는 기록이 소개된 일본 자수교과서의 내용을 재확인해 볼 수 있는 해외 첫 전시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컸다. 이를 계기로 허동화 관장은 일본에서만 지금까지 20여회 이상의 전시를 열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유럽에서는 1983년 한독수교 100주년 기념 자수전을 독일 퀼른의 케라미온박물관(Keramion Museum)에서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1984년 영국 공예의 메카로 일컬어지는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Victoria&Albert Museum)에서 한영수교 100주년 기념 전시를 연이어 개최하는 등 다른 고미술품을 제치고 1980년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 문화재로서 해외에 소개되어 각광을 받았다.

특히 기증 유물 중 하나인 보물 제653호 <자수사계분경도>는 꽃과 나비, 분재 등을 4폭에 수놓은 병풍으로 자수 기법, 화면 구도, 바탕직물 제작 시대, 실 직조 방법 등을 통해 제작 시기가 고려 말기로 추정되는 희귀한 유물이다. 수집 당시 터키 대사 부인이 선점해 외국으로 반출될 상황에 놓였던 것을 인사동 고미술상을 설득한 끝에 손에 넣은 일화로 유명하다.

국가지정 보물 이외에 조선후기 왕실 내인들이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국가민속문화재 제41호 <운봉수향낭>, 제42호 <일월수다라니주머니>, 제43호 <오조룡왕비보>도 기증의 가치를 높인 유물들로 주목된다.

평수(平繡), 자련수(刺連繡) 기법으로 수놓은 거북이 모양의 <운봉수향낭>은 조선시대 일반적인 향낭의 길이가 30cm 미만인 것에 비해 대형으로 길이가 87.5cm에 이른다. 대형의 크기에 더해 흰색 고급 공단 위에 봉황, 박쥐, 불로초 등 당시 유행했던 길상문을 정교하게 수놓았다는 점이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세기 중반 조선 왕실 상궁 김씨와 류씨가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제작한 것으로 추측되는 연두색 공단 바탕의 <일월수다라니주머니>는 뒷면에 발원자 김씨, 류씨의 불명(佛名)인 허공화(虛空華), 묘진화(妙眞華) 뿐 아니라 생년인 기유년(己酉年) 등의 명문이 남아 있다. 제작자와 제작시대를 유추해 볼 수 있어 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오조룡 왕비보>의 경우에도 왕실용 자수 유물로 의례복에 부착한 초록색의 둥근 화문단(花紋緞) 위에 다섯 개의 발톱의 정면을 바라보는 용을 정교하게 수놓은 유물이다.

허 관장에게 ‘보자기 할배’라는 친근한 별명을 갖게 한 각종 조각보 1,000여 점의 경우 허동화 관장이 옛 여인들이 간직했던 미적 감각과 실용적인 슬기가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수집을 시작했다.

네덜란드 근대 추상화의 선구자인 몬드리안의 추상화 같은 현대적 감각의 조각보는 일본 ‘이세이 미야케’ 의상, 2015 샤넬 크루즈 패션쇼 의상 제작에도 영감을 주어 우리도 몰랐던 우리 여성이 제작한 세련된 보자기 예술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했다.

허동화 관장은 “우리 자수 유물이 해외에서 특히 각광받은 이유는 우리 어머니들과 같은 여성들이 꿈과 염원을 담아 수놓은 자수 유물이 가진 미감이 세계인의 보편적인 감수성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며 “평생 이 유물들이 세계에서 각광을 받아 행복했다. 이제 기증 유물들이 서울시민들에게 큰 기쁨이자 보람이 될 것으로 확신하며, 건립 중인 공예박물관에 중요 콘텐츠가 될 것”이라고 병상에서 힘주어 말했다.

서정협 문화본부장은 세계박물관의 날(매년 5.18)을 맞아 “기증자의 뜻이 제대로 계승될 수 있도록 앞으로 기증 유물을 문화시민도시 서울로 발돋움하기 위한 소중한 자양분으로 삼아 세계가 주목하는 공예박물관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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