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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창령사 나한의 서울 첫 나들이

창령사 나한

불교佛敎의 진리를 깨우친 성자 ‘나한羅漢’이 일상 속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와 마주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국립춘천박물관의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 –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전을 관람객의 사랑과 전문가의 추천을 받은 2018년의 전시로 선정하여, 그 서울전을 더욱 새로워진 연출로 선보인다. 전시 1부는 “성속聖俗을 넘나드는 나한의 얼굴들”이라는 큰 주제 아래 국립춘천박물관의 전시의 개관(槪觀)을 유지했고, 2부 전시는 “일상 속 성찰의 나한”이라는 큰 주제 아래 중고 스피커와 창령사蒼嶺寺 나한상羅漢像으로 구성한 ‘도시 일상 속 성찰하는 나한’을 새롭게 연출했다.

1부 전시 공간은 전시실 바닥을 옛 벽돌로 채우고 그 위로 여러 개의 독립적인 좌대를 세워서 창령사 나한상 32구를 배치하여 연출하는 한편, 2부 전시 공간은 스피커 700여 개를 탑처럼 쌓아올려 그 사이에 나한상 29구를 함께 구성하여 도시 빌딩숲 속에서 성찰하는 나한을 형상화하였다. 1부 주제인 ‘자연 속의 나한’과 2부 주제인 ‘도시 속의 나한’의 주제가 대조적이면서도 ‘자아 성찰’이라는 일관된 메시지를 보여주도록 연출함으로써 도시의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자아성찰과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였다. 이 전시는 국립박물관과 설치작가 김승영이 지속적인 소통과 논의를 거쳐 과거의 문화유산을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한 협업의 결과물이란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국립박물관이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를 지향하는 창조적 문화컨텐츠 창출을 위해 노력하는 행보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창령사蒼嶺寺’라는 사찰

창령사 터 오백나한상은 2001년 5월 강원도 영월군 남면 창원리에서 주민이 그 일부를 발견하면서 오백여 년 잠들어있던 나한상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강원문화재연구소가 2001~2002년에 정식으로 발굴조사하면서 완형 64점을 포함하여 317점의 나한상과 불보살상을 발견하였다. 그 터에서는 중국 송나라의 동전 숭녕중보崇寧重寶와 고려청자 등이 함께 출토되어 창령사가 고려 12세기 무렵에 세워졌던 사찰임을 확인하였고, “蒼嶺寺” 글자가 새겨진 기와를 통해 절의 이름이 밝혀졌다. 창령사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481년, 1530년)과 ‘동여비고東輿備考'(1682년경) 등의 기록과 발굴품이 전하여 고려 중기부터 조선 중기까지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된 나한상들은 국립춘천박물관의 지속적인 조사연구와 복원작업을 거쳐 2018년 국립춘천박물관 특별전과 이번 전시에 선보이게 되었다.

창령사 터 나한상의 매력

나한羅漢은 ‘아라한阿羅漢’의 줄임말로,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불·보살에 버금가는 신성함을 지닌 존재이다. 대부분이 석가모니불의 제자들이어서 나한상에는 위대한 성자의 모습과 함께 다양한 개성을 지닌 인간적인 면모도 표현된다. 특히 창령사 터 오백나한상에는 성聖과 속俗이 공존하는 나한의 성격 중 ‘세속화’된 친근한 이미지가 강하게 나타난다. 이 나한상들은 때로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드러내며, 따뜻하면서도 정감이 가는 순박한 표정이 장인의 손길로 투박하게 표현되었다

또한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기쁨에 찬 나한과 내면의 충일감을 일깨우는 명상의 나한, 산과 바위, 동굴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수행하는 나한 등 구도자로서의 여러 모습을 구현하였다.

창령사 터 오백나한상의 가장 큰 특징은 독특한 표정의 얼굴과 함께 머리 위까지 가사를 뒤집어쓰거나 두건을 쓴 나한상이 많다는 점이다. 이는 고요히 선정禪定에 들어 구도求道의 길을 치열하게 걸었던 나한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생각된다.

왜, 여기에 나한을

이번 특별전시는 창령사 터 오백나한이 그 주인공이다. 왜, 지금 하필 나한일까? 현대인은 복잡한 사회구조와 관계, 산더미 같은 정보 속에서 다양한 욕망과 온갖 감정에 짓눌려 있곤 한다. 지금의 우리는 과연 자유롭고 행복한 것일까? 과거 우리 선조들이 장인의 혼과 깊은 신앙으로 빚어낸 창령사 터 오백나한상은 이 질문에 대한 우문현답을 제시한다. 감출 수 없는 기쁨에 찬 얼굴과 두건을 뒤집어쓰고 평온함에 잠겨든 얼굴, 그리고 무거운 고개를 떨구고 무언가에 몰입한 얼굴들을 보며 우리 안에 있는 수많은 감정과 그 안의 순수한 자신을 저절로 들여다보게 된다. 또 빌딩숲처럼 높게 쌓인 스피커로부터 들리는 도시 일상의 소리 속에서 맑은 종소리를 나한과 함께 들으며 고요히 나 자신에 집중하며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이 자리는 치유와 사색의 공간으로서 관람객에게 선사하는 선물이다.

작은 화보집畫報集과 아트토크

특별전시의 도록은 작은 화보집이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발간했다. 이 전시의 도록은 창령사 터 나한상의 다양한 얼굴을 차분히 음미할 수 있도록 여러 각도에서 촬영한 나한상의 모습을 담고 지면에 넓은 여백을 할애했으며 선시禪詩와 경전經典 문구를 함께 편집하여 마치 명상집 같은 화보집으로 기획한 것이 특징이다. 이 화보집과 함께 사진작가의 나한 사진엽서를 선물로 증정한다. 과거의 문화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에 사진작가 박종우, 서헌강, 한정엽도 참여하였고 사진작가의 눈으로 재해석한 나한상의 모습을 담음으로써 나한상에 대한 현대작가의 교감을 보여준다.

전시와 연계하여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는 두 차례의 오백나한 관련 강연과 소규모 설명회인 아트토크(Art Talk)가 있다. 개인적인 교감과 명상에 비중을 둔 내용에 걸맞게 설치작가 및 큐레이터가 전시에 관심 있는 관람객과 원활한 소통이 되도록 토크형식의 강의를 4차에 걸쳐 진행하면서 체감형 전시감상이 되도록 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가족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소원책을 만드는 “My Hero, 나한!”과, 야간에 성인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박물관 힐링 요가”도 마련하였다. 전시연계프로그램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국립중앙박물관 누리집에서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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