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기시감 품은 리듬의 힘 ‘작가 안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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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란 때로 추억을 소리로 풀어낸 이미지다. 눈으로 보이지 않을 뿐, 감미로운 색채가 상상 속에서 나래를 펼친다. 아울러 소리의 연속성이 우리를 자극한다. 이처럼 몸과 마음이 쏠린다면, 소리는 음악으로 변하고 감성을 깨운다. 감성의 전도사는 당연, 소리꾼. 우리가 가수라 부르는 이들은 리듬과 음표, 박자로 표현된 메시지를 세상에 던진다.

그림 역시 마찬가지다. 화가는 추상과 구상을 그림으로 그려낸다. 추상과 구상을 부르는 건 추억이다. 화가의 추억이 그림으로 변하고 작품은 메시지가 된다. 결국 그림에는 그가 말하는 세계, 그가 추구하는 이상이 담겼다. 세상에 던지는 화가의 그림은 그가 그토록 얘기하고 싶은 자신의 표현이다.

하늘빛과 물빛이 맞닿는 공간과 추억의 단편이 담긴 듯, 작품에는 선(線)이 녹아든다. 점(點)이 모여 이뤄진 선에서 배타적인 감정이 들기보단 포용하는 힘이 넘쳐난다. 남과 다르다고 선을 긋는 세상에서 안 작가의 작품은 나와 너와 당신을 아우른다. 막연함이 아닌, 명확하면서도 실체를 되새기는 작가의 시선이다.

당신을 껴안고, 나를 보듬고 주변을 품는 그림에서 부드러운 힘이 느껴진다. 힘의 근원은 강하지도 뚜렷하지도, 그렇다고 분명하지도 않다. 아스라이 스러져가는 갈대의 물결처럼 작품에는 리듬이 깃든다. 리듬이란 힘으로 선율(旋律)은 귀뿐 아니라, 눈과 손의 감각에서도 느낄 수 있다. 안 작가의 그림에 리듬이 있다는 말은 그러한 의미다.

안 작가의 그림에선 파고를 찾기보다 낮은 물결의 흐름과 시간의 감각이 자리한다. 잊힌 시간의 흐름이 잔잔한 수면 위에 담겼다. 나에게로 다가오듯, 때로는 멀어지듯, 물결은 눈빛 속에서 방향감각 없이 흐른다. 그러한 빛의 결에서 생각의 단초는 가벼이 물 위를 걷는다. 너무 가벼워 때로 결은 겹을 이뤄 원근을 만든다. 그러기에 관객이 생각의 실마리를 찾는다.

하지만 정신을 깬 관객은 다시금 무언의 메시지 속으로 빠져든다. 그러한 감정의 행보에는 관객의 과거가 담기고, 미래의 고단함이 녹아든다. 이처럼 현재의 기시감(旣視感)을 품는 작품에서 관객은 스스로 빠져들고 깨기를 반복한다. 평온한 풍경과 달리, 보는 이의 스산한 감정이 작품에 묻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심연(深淵)으로 이끄는 작품과 물결 속에서 고개를 들어야 하는 관객이 상충하며 보이지 않는 파문을 만든다. 결국 감정의 기복을 없애고 풍경 그대로를 느끼게 하는 건 자신에게 달렸다. 작가와 작품은 이를 도울 뿐이다. 해서 안 작가의 그림이 유의미한 매개체로서 그 역할을 다한다. 말 없는 작품과 있는 그대로를 보이는 그림이 있을 뿐, 감성의 발로(發露)는 자기 자신이다.

원경을 바라보는 인간의 심리에는 여유로운 감정을 찾고자하는 바람이 있다. 시초를 다투는 갑갑한 세상에서 자연스레 눈길은 근경보다 더 먼 곳을 내다보려 한다. 달리 말해 오감을 편하게 하려는 시도(試圖)가 관객을 이끈다. 편한 시각의 느낌, 부드러운 촉각의 느낌, 피아노 연주를 들은 청각의 느낌, 감성을 자극하는 후각의 느낌, 혀를 녹이는 미각의 느낌이 작품에서 우러난다.

평이하다는 평(評)은 관점을 달리할 때 다른 시각을 낳는다. 눈을 촉촉이 적시는 눈물처럼 때로는 느낌의 정도가 미약하다. 하지만, 결코 없어서는 안 될 감각이다. 시선을 짧게 하면 태초의 모습이 담긴 듯, 그러한 작품에는 하늘과 물과 풀이 조화로우며 우리를 자극한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알아채지 못한 풍경으로서, 의도(意圖)의 인지는 자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안 작가의 그림에서 여백이란 그 의미를 달리한다. 무색으로 채워진 공간의 배치가 아니라 색의 펼침이다. 사이사이에 들어찬 같은 느낌의 색이 눈빛을 물빛 속으로 이끈다. 한적한 풍경 속에서 초연함이 존재하고 멈춰버린 기억의 장면이 자리한다. 단면에 연속성을 부여하려면 상상을 불어넣어야 한다. 색의 펼침이 넓기에 사고의 여지(餘地)도 크다. 작품을 보는 시선에 다양성이 존재하고 감응이 다를 수 있는 이유다.

상상의 근원은 우리의 행로와 현재의 시점과 미래의 여정으로 메워진다. 이러한 연유로 그림에는 서정만이 아닌, 서사도 담긴다. 멈춰진 자연의 형상에 바람이 불고, 물결이 일고, 안개가 찬다. 부동(不動)의 시선에 흔들림이 서리고, 기억의 감성이 시간처럼 흐른다. 움직이는 눈빛을 고정하는 건 무색처럼 놓인 색의 공간이다. 빈자리에서 자연의 색감이 시선을 끌어당긴다. 관성과 같은 끌림이 관객을 둘러싸고 그림에 빠지도록 속도를 높인다.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풍경의 모습은 이 때문에 결코 연을 끊지 않는다. 가느다란 실타래만으로 길을 찾는 여행자처럼 그림은 기억의 저편을 비춘다. 까마득하지도 않은, 그렇다고 눈에 밟히지도 않은 거리에서 장면과 장면은 이어진다. 이러기를 반복하며 기억의 단추는 채워지고 그림은 의미를 맺는다. 연결된 사유 조각으로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게 가능한 이유다.

이러한 자유를 만끽하게끔 밑바탕을 이루는 건 그림이다. 여유의 공간이 존재하기에 사색이 있고, 방향을 달리해 사고할 수 있다. 시간을 거스르는 추억과 시간을 앞서는 상상이 작품에 함께 존재하는 연유다. 횡(橫)으로 흐르는 물결이지만 생각이 전(前)과 후(後)로 자유롭게 움직이며 결국 그림은 무한의 공간을 품는다.

안 작가의 작품이 단지, 캔버스 위에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즉, 틀에 매인 그림이라기보다 그의 작품은 끝없이 파고들며 시선을 넓힌다. 전체 가운데 일부를 표상한 장면에선 수평선의 끊김이 아니라 영원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 단면조차 그림에는 헤아릴 수 없는 깊음이 내재한다.

글 조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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