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EF

MEDIA N is KOREAN leading news service system. MEDIA N provides audiences in KOREA with high quality and distinctive services across online. MEDIA N also delivers impartial news and information to overseas KOREAN around the globe through the World Service.




FEEL SO GOOD
MEDIA N


ARTICLE
scroll












화성

조선 정조 임금과 신하 정약용의 염원



















유럽 성채가 부럽지 않은 문화재

정조와 정약용의 합작품으로 알려진 화성. 장안문과 팔달문, 창룡문, 화서문이 둘러싼 화성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성채로 완벽에 가까운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친위대와 왕권강화

당초 성이 완성되기까지 1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으나 정약용은 과학기술을 적용해 3년도 걸리지 않는 시간에 성채를 완성한다. 성에는 정조의 친위대를 두어 왕권강화에 한몫을 담당한다.



















화성행궁

화성에는 정조 임금을 포함해 역대 왕이 머무는 공간이 존재한다. 바로 행궁. 훗날 자신이 왕위에서 물러나면 머물 생각으로 그는 화성에 행궁을 지었다.



















현명한 신하

거중기와 녹로 등 축성 장비를 고안해 사용했기에 공사 기간이 무려 삼분의 일로 줄었다. 당시 기록에는 정약용이 공사책임제를 도입하고 공사에 동원된 백성에게 적합한 보상을 제공했기에 가능했다고 전해진다. 정약용의 합리적 사고방식이 스며든 화성, 중세 유럽의 성과 비교해 손색이 없다.













FEEL SO GOOD
MEDIA N


READ MORE

CLICK




FEEL SO GOOD
MEDIA N


ARTICLE
scroll












흑사병

인류의 재앙, 종말을 예고했던 전염병 | 12지신 쥐



















죽음의 사자

흑사병은 14세기 유럽에서 창궐한 전염병. 유럽 인구의 절반 가까이 죽였다는 공포의 질병은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발병하면서 유럽 전역에 커다란 해를 끼친다.



















쥐와 벼룩과 박테리아

병의 원인은 페스트균으로 밝혀졌고, 이는 쥐를 통해 퍼졌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 흑사병의 원인을 알지 못했던 인간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검정 피부

일단, 병에 걸리면 이름답게 피부가 검게 변하는 증상을 보였다. 훗날 박테리아에 감염된 쥐의 혈액을 벼룩이 먹고 그 벼룩이 인간을 물면 감염된다고 밝혀졌다. 위생 관념이 부족했던 당시 인류는 전염병으로 잔혹하게 죽음에 이르렀다.



















동물과 인간의 동시 감염

동물과 인간이 동시에 감염되는 흑사병은 국가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거나 무역과 같은 교류가 있을 때 전파되곤 했다. 특히 쥐는 인간 주변에 서식하는 동물로 전염병의 전파 속도를 높였다.













FEEL SO GOOD
MEDIA N


READ MORE

CLICK




FEEL SO GOOD
MEDIA N


ARTICLE
scroll












추적추적, 비 오는 달밤

나막신, 격지, 목극(木屐), 목리(木履), 목혜(木鞋)



















발은 젖고 진흙탕 투성이

지금처럼 운동화, 가죽구두, 장화가 흔하지 않던 시절, 우리 조상은 나무토막으로 신발을 만들었다. 짚으로 만든 짚신은 비가 오는 날 활동을 제약했고 나무신은 필수불가결한 선택이었다. 나무 가운데 오동나무와 버드나무를 사용한 목신이 가장 최고급. 어두운 밤길, 비라도 내리면 나무신이 절실했다.



















그대의 무거움은 여행의 피로

가방과 옷과 신은 가벼워야 한다. 하나, 날개처럼 가벼운 옷가지와 달리 나무신은 발걸음을 늦췄다. 자연스레 비가 오는 날이 아니면 그 쓰임새가 많지 않았다. 나무신은 화(靴), 즉 목이 긴 신발과 달리 짧게 제작했다. 이를 혜(鞋), 리(履)라 불렀다. 말을 타거나 사냥을 하는 북방계 사람들은 화를 주로 신고 농사를 짓는 남방계 민족은 혜나 리를 신었다.



















신발도 신분따라 제각각

여성의 하이힐은 또깍또깍 소리를 낸다. 나무신 역시 발이 물에 젖지 않도록 높은 굽을 사용한 탓에 제법 큰 소리를 냈다. 이 때문에 힘이 없는 백성에게 나무신은 그림에 떡!!. 신분이 높던, 하지만 가난했던 선비들이 애용하던 나무신 때문에 남산골 딸깍발이라는 말도 생겼다.



















가죽신은 명품 구두

벼슬을 가진 지배층이나 신던 가죽신은 귀한 물품. 피지배층은 볏짚과 갈대, 미투리 등으로 신을 만들었다. 귀한 가죽과 비단으로 마무리를 한 신발은 지금으로 봤을 때 명품 구두에 해당했다.













FEEL SO GOOD
MEDIA N


READ MORE

CLICK




FEEL SO GOOD
MEDIA N


ARTICLE
scroll












사악한 기운아, 물러서라!!

철제 금은입사 사인참사검(鐵製 金銀入絲 四寅斬邪劍)



















무림비급(?), 검결까지

사악한 기운을 물리친다는 사인검은 모두 27자 검결(劍訣)이 전서체로 새겨졌다. 악의 기운을 없애려면 양기(陽氣)가 충분해야 하는데 사인검은 무려 그 기운이 네 배. 비결은 칼의 제작 시간에 있다.



















양기 충만

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를 뜻하는 간지. 이 둘의 조합은 60갑자를 만든다. 하나의 갑자가 다시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60년. 60세에 맞이하는 환갑이 이를 뜻한다. 사인검은 유독 양의 기운이 강하다는 시간에 제작됐다. 십간과 십이지는 각각 양(陽)과 음(陰)이 반복되는데, 사인검은 양기가 충만한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에 만들어졌다. 여기서 인(寅)은 12 동물 가운데 호랑이에 해당한다.



















별빛 품은 검(劍)

사인검에는 검결뿐 아니라, 별자리도 새겨졌다. 북두칠성과 28수 별자리가 그 형태를 보인다. 별자리는 동서남북 네 개의 방위로 나뉘어 7개씩이다. 역시나 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사신에 해당한다. 사신은 지금으로 보면 전갈자리, 궁수자리, 황소자리, 쌍둥이자리와 같은 별자리를 관장했다.



















벽사(辟邪)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친다는 의미의 벽사. 사인검은 실제 전쟁에서 사용하는 무기라기보다 주술적 의미를 담은 칼에 해당한다. 임금이 의장용으로 지녀서 우두머리의 상징으로 삼았다. 검의 양면에 한쪽은 검결, 다른 한쪽에는 별자리를 새겨 잡령을 물리쳤다.













FEEL SO GOOD
MEDIA N


READ MORE

CLICK




FEEL SO GOOD
MEDIA N


ARTICLE
scroll












따오기의 관

기원전 305-30년 | 브루클린박물관



















신의 이름은 토트

다신교였던 이집트에는 여러 신이 존재했다. 지식과 지혜, 과학을 관장하는 신의 이름은 토트(Thoth). 그는 동물 머리를 한 형태로 그려지는데 새 가운데 특히 따오기로 보이는 얼굴을 지녔다.



















태양신 라의 심장

토트는 이집트에서 태양신으로 여겨지는 라(Ra)의 심장, 또는 혀로 상징된다. 그는 하늘의 여신 누트와 낳은 자신의 자식이 이집트를 다스리게 된다는 신탁 때문에 곤경에 처했다. 하지만 지혜로운 머리로 이를 방해하려는 태양신을 따돌린다. 여기서 태어난 신이 오시리스와 세트다.



















지혜와 지식의 상징

지식과 지혜를 상징하는 토트는 사자의 서에서 기록을 담당하는 서기관으로 그려진다. 고대 이집트 문자를 발명한 뒤 인간에게 주었다고도 전해지는 토트는 이집트 전역에서 숭배됐다.



















동물의 관

고대 이집트는 발견된 유물처럼 인간뿐 아니라 동물도 미라로 만들었다. 따오기 모양의 관은 지식과 지혜의 신 토트의 영향으로 보인다. 금과 은, 수정을 사용한 관은 세밀하면서도 화려하다.













FEEL SO GOOD
MEDIA N


READ MORE

CLICK




FEEL SO GOOD
MEDIA N


ARTICLE
scroll












왕의 머리

이집트 테베, 기원전 약 80-58, 55-51년 | 브루클린박물관



















프톨레마이오스 12세

유물의 주인공은 프톨레마이오스 12세로 추정된다. 그는 왕위를 빼앗기고 빼앗으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고대 이집트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 당했고 임명된 총독에 의해 지배되는 역사를 지니게 됐다. 그가 이집트를 다스리도록 임명한 장군의 이름이 바로 프톨레마이오스. 이 때문에 이집트에서 그의 이름을 딴 왕조가 시작된다.



















왕족의 권력다툼

처음과 달리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역시 후기로 갈수록 백성의 불만이 팽배해지면서 붕괴되기 시작한다. 기원전 305년부터 기원전 30년까지 300년 정도를 통치했다고 알려진 왕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외부에 의해서 세워진 이집트 왕조는 왕족간의 권력다툼으로 병들어 무너진다.



















나일강 전투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 13세는 역사상 유명하다. 그가 바로 갈리아를 정복하고 로마의 영토를 넓힌 카이사르와 전쟁을 벌인 이집트의 파라오이기 때문. 결국 그와 싸움에서 패퇴하고 나일강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죽음을 당한다.



















로마에 휘둘린 왕조

전임 파라오가 시민들의 분노로 살해되고 통치자가 된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로마 제국에게 압력을 받으며 때로는 의탁도 하며 왕위를 이어간다. 권력기반이 약했던 그는 카이사르와 경쟁관계였던 폼페이우스의 지원을 받아 왕조를 유지했다.













FEEL SO GOOD
MEDIA N


READ MORE

CLICK




FEEL SO GOOD
MEDIA N


ARTICLE
scroll












토티르데스의 관

이집트 테베, 기원전 8-7세기 | 브루클린박물관



















공포스런 미라

고대 이집트 왕조는 사후 세계를 믿어 죽은 이를 미라로 만들었다. 흔히 붕대로 감긴 시체가 되살아 인간을 좇는 영화가 많은데 실제 시체를 아마천으로 싼 뒤 관에 넣었다. 미라로 된 시체는 공포스럽게도 내장이 모두 제거된 상태로 자신이 죽은 뒤 시체가 썩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같은 작업을 했다.



















사자의 서

미라와 함께 발견되곤 하는 유물이 있는데, 바로 사자의 서. 고대 이집트인은 죽은 뒤, 신 오시리스 앞에서 심판을 받고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 했다. 사후 세계의 안내서로 여겨지는 사자의 서는 망자가 기억해야 할 내용이 적혔다. 신이란 심판자 앞에 선 망자, 그들은 자신의 심장과 깃털을 무게로 재서 더 가벼워야 영생이라는 기쁨을 얻었다.



















망자의 여행

머릿속의 뇌마저 제거 당하고 장기는 단지에 넣어 관과 함께 매장됐다. 발견된 미라의 관은 177.8센티미터, 미라는 154.9센티미터의 크기를 하고 있다. 당시 살았던 이들의 신장도 알 수 있는 유물. 관은 오시리스을 닮았고 관의 겉면에는 망자가 죽은 뒤 여행하는 사후 세계가 그림으로 펼쳐진다.



















쇠퇴한 왕조의 유물

관의 주인으로 알려진 토티르데스는 이집트 제26왕조 시기에 살았던 인물로 추정된다. 기원전 664년부터 기원전 525년 사이에 이집트를 다스렸다고 알려진 왕조는 고대 페르시아와 전쟁을 치르며 쇠퇴했다.













FEEL SO GOOD
MEDIA N


READ MORE

CLICK




FEEL SO GOOD
MEDIA N


ARTICLE
scroll












람세스 2세

이집트 아비도스, 람세스 2세 신전, 기원전 약 1279-1213년 | 브루클린박물관



















장수한 왕

고대 이집트 전성기를 이끌었던 람세스 2세는 장수했다고 알려졌다. 그는 90세까지 이집트를 통치했고 지금도 분쟁이 발생하는 팔레스타인을 두고 전쟁을 벌였다.



















석회암 재질

유물은 석회암과 안료를 사용해 파라오, 즉 람세스 2세를 묘사했다. 석회암은 내구성이 좋고 가공이 비교적 쉽기 때문에 조각 재료뿐 아니라 건축용 석재로 널리 쓰인다. 산호와 조개 등 다양한 생물체의 패각이 쌓여 형성된 석회암은 주로 따뜻한 기후, 또는 열대지방의 얕은 바다에서 굳어져 생긴다.



















불멸의 파라오

파라오는 고대 이집트 왕국을 통치하는 왕을 지칭한다. 내세를 믿었던 이집트는 왕이 죽은 뒤에도 영혼이 남아 불멸한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통치기간 피라미드를 지어 사후에 지낼 공간을 만들었다. 인간이 아닌 신으로 추앙됐던 파라오는 피라미드 안에서 영원한 권력과 안식을 누렸다.



















거대 피라미드

이집트 기자 지구에 가면 전체가 석회암으로 이뤄진 거대 피라미드가 발견된다. 벽돌형태로 가공하기 쉽기 때문에 건축물의 바닥이나 기둥으로 사용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석회암으로 이뤄진 유적이 발견되곤 한다. 대표적인 문화재가 원각사 10층 석탑. 현재도 고급 건축물의 내장재로 사용되며 예술적 가치를 지닌 조각상의 재료로 사용된다.













FEEL SO GOOD
MEDIA N


READ MORE

CLICK




FEEL SO GOOD
MEDIA N


ARTICLE
scroll












여행하는 부부가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세기 말 |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죽음에도 예술 가치 부여

이탈리아 반도의 중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했던 에트루리아 문명에서 발견된 유물. 보이는 유골함에는 마차가 조각됐다. 사람들과 작별하며 말들은 수레를 끌고 앞을 향하고 있다. 마차의 짐칸에는 시신이 있음을 짐작케 한다.



















죽음, 누구나 거쳐야 하는 종착지

과거 동유럽 국가에서는 불치병에 걸린 이들을 냉동한 일이 있었다. 병에 걸린 환자는 치료법이 개발될 때까지 생명을 유지하고자 했다. 일부는 전신 냉동이 아닌, 머리 부분만을 잘라 냉동하는 일마저 일어났다. 실상 인간이 저온 수면상태가 되면 신체활동이 늘려지고 세포의 노화속도가 감소한다.



















인간의 유한성

인간은 죽음의 공포와 함께 살아간다. 평균수명이 늘었으나 100년을 넘기는 일이 드물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체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다. 끝없는 욕망이 현재의 편안함을 추구케 하고 나아가 불멸의 삶을 꿈꾸도록 한다. 장수를 빌고 불로초를 찾고 노화를 방지하는 모습은 인간에서 발견되는 특징.



















종교 발명의 필요성

사후 세계에 관한 안식처를 마련하려 인간은 종교를 발명했다. 그 믿음은 죽음이란 공포를 이기는 데 유용하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과 천당, 불교에서 일컫는 극락세계 등은 인간에게 영생을 약속한다. 인간의 역사에 있어 최고의 발명품은 다름 아닌 신과 신앙이라는 표현이 그리 불경하지 않다.













FEEL SO GOOD
MEDIA N


READ MORE

CLICK




FEEL SO GOOD
MEDIA N


ARTICLE
scroll












유피테르

기원전 2세기 | 이탈리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천둥의 신

조각상은 유피테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 귀에 익숙한 주피터(Jupiter)와 발음이 비슷한데 실제 같은 신을 가리킨다. 즉,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 하늘의 신이자 천둥의 신은 번개를 들고 숭배를 받으며 인간을 심판했다.



















신에 관한 숭배

유피테르 조각상은 에트루리아 국경지역의 식민도시 루니에서 발견됐다. 도시 내에 로마인들은 달의 여신 루나를 모시는 신전을 세웠고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건축물과 조각상을 남겼다.



















알고보면 문화 선진국

자신들을 정복한 로마보다 군사력은 약했으나 수준 높은 문화를 지녔던 에트루리아. 그리스 문명의 영향을 받음과 동시에 로마 제국을 성장시키고 그 바탕이 된 문화의 초석이 됐다.



















신전과 신화의 나라

각각의 도시에 티니아, 우니(그리스의 헤라), 멘르바(로마의 미네르바)를 모신 신전을 짓고 신화에 관심이 많았던 에트루리아. 그리스와 로마처럼 점성술과 예언을 통해 의사결정을 내렸던 그들에게 신은 절대적 존재였다. 신을 가장한 지배자의 논리에 속았는지도 모를 에트루리아 피지배층은 적어도 문화적으로 발전된 문명사회를 이뤘다.













FEEL SO GOOD
MEDIA N


READ MORE

CLICK
Travel & Health ZONE
여기가 거기?
덕수궁 옆 정동 세실극장 옥상
남산둘레길 겨울산행
경의‧경춘선숲길 일 3만
부안 직소폭포 일원

MEDIA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