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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BRI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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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복, 지위의 상징
아우구스투스의 군복, 드레스덴 무기박물관

절대적 존재는 자신을 꾸민다

신과 인간의 경계를 명확하게 그어야 했던 과거의 지배자들. 자신을 신의 후예 혹은 신과 동일시하게 만들 필요는 분명했다. 용과 같은 환상의 동물은 물론, 상서로운 짐승을 자신의 상징으로 삼거나 그 대상이 갖는 이미지를 이용했다. 의복은 그 대상으로 적합했다.

전쟁의 패배자, 복위를 꿈꾸다

스웨덴과 전쟁에서 패한 아우구스투스. 왕위를 잃은 그는 폴란드 왕으로 돌아가려 애썼다. 전쟁에서 지고 군복과 마차조차 일반 병사들에게 빼앗긴 강건왕. 이 같은 굴욕을 견디고 다시 제작을 지시한 군복은 지극히 화려하다. 금실로 자수를 놓아 마련한 군복는 실전용이 아닌, 의례용. 왼쪽 가슴 부위, 즉 심장 위치에는 십자가를 새겼다. 그 주위를 태양 문양이 둘러싼다.

군인에게 계급은 생명

군대조직에 있어 계급은 생명. 지위계통이 분명하지 않으면 전쟁에서 이기기 어렵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쟁, 명령은 절대적이고 계급은 그 원천이 된다. 왕과 장군의 작전을 충실하게 따라야 했던 과거 백성들. 나무 방패와 허술한 창, 낡은 총, 때로는 농사기구로 무기를 대신해야 했던 피지배층, 그들에게 군복은 사치에 불과했다. 자연스레 계급장과 위엄 서린 군복은 명령을 이행케 하는 힘을 지녔다.

전쟁무기와 의복, 문명수준의 잣대

전쟁은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이래 존재했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짐승의 대결은 때로 문명을 발전케 하는 과정이 되기도 했다. 돌과 나무, 짐승의 뼈 등을 무기로 사용하던 시대를 지나 청동기과 철기 시대를 거치며 전쟁의 역사는 발전했다. 화약이 등장하고 공성 무기가 개발되며 살상의 위력은 양과 질적인 면에서 속도를 더한다. 승전 뒤, 전리품의 분배와 연회가 의장용 무기와 의례용 의복의 존재 이유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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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랑에 빠진 임금과 선비
책가도(冊架圖), 책거리(冊巨里), 병풍(屛風)

서재 그렸나(?)

시(詩)와 서(書)와 화(畫)에 능해야 했던 과거 선비. 그들은 책을 가까이 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났다. 자연스레 책 사랑은 그림으로 이어져 병풍이 됐다. 대개 양반집은 병풍에 매난국죽(梅蘭菊竹)이나 모란 등을 그렸으나 기품을 살리려 학식 높은 선비는 책가도를 선호했다.

등장인물은 책만 있나

책가도에는 서적뿐 아니라 도자기와 벼루, 먹 등 문방사우(文房四友)도 같이 그려졌다. 책가도의 특징은 원근감이 느껴진다는 데 있다. 정면에서 본 모습을 2차원으로 그리지 않고 입체감을 살렸다. 몇 권의 책이 쌓였는지도 알 수 있으며 책이 놓인 선반의 깊이마저 그림에서 드러난다.

알고보면 임금사랑

책가도의 가치가 유독 높은 이유는 그 시초에 있다. 조선왕조의 역대 임금 가운데 인기가 높은 정조(正祖)가 책가도 사랑에 빠졌다. 무신정권으로 탄생한 조선은 후기로 갈수록 문치주의를 강조했다. 지방 군권을 견제하고 제어해야 했던 임금은 신하들에게 무용보다 학식을 강조했다.

귀족계급의 전유물에서 탈피

19세기에는 책가도가 일반 백성에게 퍼졌다. 글(文)이란 지배계급의 전유물로 여겨졌으나 책가도는 민화로 제작되어 퍼졌다. 궁중화풍에서 벗어난 책가도, 자유분방한 기법으로 다양한 책가도가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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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들, '배그' 한판 아니 '바둑' 한판 어떠한가.
바둑에 빠진 풍류객

바둑, 시기조차 알기 어려운 고전놀이

바둑의 기원은 고대 중국으로 거슬러 올라가나 처음 시작된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우리나라에는 5~7세기경 전해졌다고 추정된다. 한국, 대만,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 널리 퍼진 게임은 오늘날에도 그 놀이객이 끊이지 않는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배틀그라운드나 스타크래프트와 같이 옛 선비는 바둑으로 여가를 즐겼다.

체스 뛰어넘은 AI, 바둑까지 점령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시기. 인공지능(AI)은 체스를 정복하고 바둑까지 점령중이다. 수많은 수가 존재하고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예측력과 순간의 기지까지 필요한 바둑에서 AI는 이미 고수의 자리에 올랐다. 바둑 고수 '알파고'에게 풍류객의 이름을 부여하는 건 당연지사.

바둑 인기, 알파고 돌풍은 일시적(?)

개인용 컴퓨터가 흔하고 스마트폰이 필수품이 된 시대. 젊은 학생들은 바둑이나 장기보다 비디오 게임과 온라인 게임에 열광한다. 바둑과 같이 전술, 전략을 다투는 종류의 게임이 수천가지에 이르는 시대, 선택의 폭이 넓어진 풍류객에겐 바둑은 낯설기까지 하다.

프로게이머는 현대판 풍류객

풍류를 즐기며 동무들과 바둑에 몰두했던 옛 선조들. 요즘 젊은이들이 즐기는 유명 게임도 그 기호 원인은 같지 않을까. 하나 사고의 깊이를 겨루는 온라인 게임, 비디오 게임을 굳이 바둑에 비유한다면 자못 비난이 쏟아질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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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시오, 호패 좀 봅시다.
조선시대 신분증명, 호패 | 문화재청

과거의 주민등록증

과거 조선시대는 호패법이 시행됐다. 신분을 증명하는 수단으로써 16세 이상 남자는 호패를 차고 다녀야 했다. 오늘날보다 제도의 시행 적용 나이가 어린데 조혼이 성행했던 조선시대인지라 이상하지 않다. 유명한 고전 로맨스 '춘향전', 그 주인공의 나이도 이팔청춘이었다.

역시나 남존여비

출타할 경우 여인들이 얼굴도 가려야 했던 시기, 호패는 역시나 남자의 전유물. 앞면에는 이름과 직함, 관직 진출 시기와 출생연도가 기재됐다. 고려시대부터 이어진 제도로 호패는 신분계층별로 재질과 기록 내용이 달랐다. 호패법의 시행 목적이 군역에 있었기에 백성의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제도.

위조방지 골몰

호패제도로 군역에 시달렸던 백성은 이를 피하려 양반의 노비로 자청해서 들어가거나 호패를 위조 또는 교환하는 불법행위를 자행했다. 요즘도 군대에 가지 않으려 하는 젊은이가 많은 것처럼 당시에도 이와 비슷한 꼼수가 존재했다. 호패를 지니지 않을 경우 엄벌에 처하는 규정이 있었으나 제도의 완벽한 시행이 어려웠다.

고급재질부터 잡목까지

죽어서야 반납이 가능했던 호패, 귀족은 상아 혹은 녹각으로 이를 만들었다. 이외에도 자작목, 황양목 등이 쓰였다. 신분계급이 낮은 백성은 기타 잡목을 사용했다. 인구를 파악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부역에 이용됐던 호패제도는 실효성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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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 영롱 빛 품다
연꽃 담은 빛 상자, 조선 나전칠기 살피다

빛과 바다

나전은 전복과 진주조개 등 어패류 껍질을 갈고 오려서 특정 문양을 만든다. 봉황이나 원앙, 꽃 모양을 새긴 자개장은 예로부터 혼수로 가지고 가는 귀한 가구. 보이는 문화재는 물품을 담는 상자로 연꽃과 넝쿨 줄기 모양을 넣었다. 연꽃은 불교에서 중시하는 식물로 경전을 보관하거나 서적을 보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재료는 바다거북

흔히 조개 껍질만 나전칠기의 재료로 사용한다고 알고 있으나 바다거북의 등껍질도 사용된다. 이러한 방법을 대모복채법(玳瑁伏彩法)이라 한다. 나전칠기는 패각(貝殼)을 재료로 사용하지만 금이나 은과 같은 금속판을 대신 사용키도 한다.

연화장, 연화경

수련과에 속하는 연꽃은 불교와 관련성이 가장 깊다. 해서 법화로도 불리며 씨와 줄기, 잎 등은 약재료로 쓰이고 뿌리는 식재료로 사용된다. 묘법연화경은 연꽃의 이름을 지닌 경전으로 천태종의 근본이 된다. 법화경으로도 불리는 묘법연화경은 삼국유사에서도 그 기록을 찾아볼 수 있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제작된 판본이 현존되고 있다.

구슬무늬, 연주문(連珠文)

나전함은 연꽃 문양 이외에도 구슬무늬가 눈에 띈다. 구슬은 꽃씨의 형상을 띠는 것으로 추정된다. 연꽃 둘레를 연주문이 감싸면서 기품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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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문, 번개의 형상
번개 모양을 닮은 뇌문이 백자에 새겨지다.

익숙한 문양

문화재에서 흔히 보게 되는 뇌문(雷文), 의미 그대로 번개를 간소하게 표현한 무늬. 위아래 양쪽으로 갈라진 백자에는 뇌문이 음각으로 새겨졌다. 각각의 뇌문은 끊김이 없고 서로 연결된 형상을 보인다.

돌 회(回)

뇌문은 한자 가운데 돌아올 회(回)를 닮았다. 번개는 상고시대부터 인간에게 숭배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치수와 치우가 중요한 농경사회에서 번개는 비의 전조로 하늘을 숭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과학지식이 전무했던 선조에게 번개란 자연현상은 주술적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동서양을 관통하는 뇌문

하늘에서 내리치는 번개와 그 소리인 천둥은 인간에게 공포심을 야기했다. 이 때문에 신의 징벌로도 여겨졌고 그리스의 우두머리 신 제우스는 번개를 손에 들고 인간을 심판했다. 실상 번개가 내려치고 직후에 울리는 소리, 즉 천둥은 고압의 전기가 공기를 가열하면서 급격히 팽창을 하고 그로 인해 발생한다. 이는 소리보다 빛의 속도가 더 빠르다는 자연법칙을 증명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발견시점

뇌문과 같은 선형 모양은 청동기 시대를 거슬러 신석기 시대의 토기에서도 발견된다. 끊어짐 없이 이어지는 문양에서 뇌문은 장수(長壽)의 의미도 지녀 도자기와 여러 공예품에 단골 소재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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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욕구, 목간
종이가 귀한 시절 인간은 나무에 글자를 새겼다.

목간, 죽간

갑골문과 같이 거북 배껍질에 기록을 남기거나 쉽게는 대나무에 글자를 새겼다. 분량에 따라 목간은 수를 더했고 끈으로 엮어 두루마리 형태로 보관했다.

죽찰, 목찰

지금의 서찰과 달리, 나무를 엮은 것을 죽찰이라 불렀다. 나무 이외에도 비단과 같은 천에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현재 사용하는 종이보다 무겁고 많은 공간을 차지해 보관에 어려움이 따랐다.

동굴벽화, 그리고 목간

인간은 본시 자신이 본 광경과 들은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려는 본능을 지녔다. 원시인이 동굴에 거주하며 남긴 동굴벽화와 맥락을 같이한다.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 경전과 고서는 나무에 새겨져 대대로 이어졌다.

지식의 전파

남겨진 기록, 인류의 지식이 담겨진 목간은 문명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한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 인류는 수제로 기록을 하나씩 남겼고 이와 같은 기술의 한계가 지식 전파를 막았다. 글자의 창제와 인쇄 기술은 인류 문명을 급속하게 발전시켰고 이는 현대에서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과 같이 개인용 단말기의 보급은 인류에게 지식의 전파와 공유를 수월하게 한다. 전자문서와 단말기가 보편화 된 현재, 인류는 중대한 기로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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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니처
권위의 상징

인(印)

과거 귀족층은 자신만의 독특한 시그니처를 지녔다. 유력 가문이 자신들의 배경을 강조하려 사자, 독수리, 용 등을 가문의 문장으로 사용한 일과 유사하다. 중국과 한국 등 동양에서도 왕과 왕족은 자신의 인장을 만들어 문서의 증빙으로 삼았다.

정통성과 위엄

황제, 임금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옥새와 왕족과 귀족이 사용하던 인장은 재질에서도 금과 옥 등으로 제작해 권위를 부여했다. 현대에도 서류에 기명 날인을 하는데 과거의 관습이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전자문서가 대중화된 지금도 자신만의 시그니처는 스캔 등을 통해 여전히 사용된다.

손잡이 신수

인장은 용과 호랑이, 거북 등이 새겨져 사용자의 출신을 대변했다. 용은 임금의 상징으로 아무나 인장에 용을 조각하지 않았다. 때로는 여러 동물이 혼합된 상서로운 짐승 모양이 손잡이를 대신했다.

인장, 주술적 의미

나라가 혼란할 시기 옥새가 사라져 외딴 곳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때로는 아예 그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황제와 임금의 정통성, 상징이던 인장은 그 주인이 아닌 습득자에게도 귄위를 주었다. 임금은 하늘이 정한다는 주술 사상, 인장의 원래 주인뿐 아니라 발견자에게 선민의식과 같은 선인의식(選人意識)을 지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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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보석, 소금
인류를 살리는 물질 3%

식재료와 맛

생명의 근원 바다를 이루는 3% 물질은 소금. 단, 3%가 전 생물종을 살리고 있다. 그럼에도 세계보건기구(WTO)가 권장하는 하루 소금 섭취량은 5g. 없어선 안 될 물질이지만 지나쳐서도 안 되는 염화나트륨. 매일 가까이 두고 먹지만 때로는 필요악. 두뇌와 신경에 정보를 전달하는 데 쓰이는 소금은 식재료로써 인류 문명과 함께 했다.

금전과 동등한 대우, 건강에는 독

한때 소금은 귀중한 물질로 금전과 동등한 가치를 인정 받았다. 노동력과 교환하거나 물품 대금으로 인류는 소금을 사용키도 했다. 하지만 고혈압과 위염, 골다공증을 유발하는 유해 성분. 적당량이 아니면 소금은 생명을 위협한다.

바다에서 건지는 흰 보석

수분이 제거된 염화나트륨 조각은 반투명 상태로 빛을 반사하는 각진 형태를 보인다. 인류는 소금을 식탁 위에 올리며 취향에 맞도록 맛을 조절하는 식문화를 지녔다.

두 얼굴의 백색 결정체

신경통, 관절염에는 좋다고 알려진 소금. 소금하면 바다를 떠올리기 쉽지만, 더 흔하게 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광산. 소금 광산에서 채굴된 암염이 바다에서 얻은 천일염보다 더 많은 소비를 보인다. 국내에서는 암염을 채굴하지 않는 탓에 접하기 어려우나 인류는 천일염보다 암염에 익숙하다. 빛과 소금이라는 표현처럼 두 얼굴을 지닌 물질이 인류에게는 필요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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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밝히는 신수 '코끼리'
코끼리 받침 촛대

불교 상징

불교 국가로 대표적인 미얀마에서 발견된 촛대. 불교에서는 코끼리를 신성하게 여긴다. 촛대는 코끼리 모양으로 제작됐고 재질은 흙을 구워 만든 도자기. 도자기는 고온에서도 변형이 없고 불에 타지 않는 성질을 지닌다.

초꽂이

초를 꽂는 곳은 코끼리의 머리 부분에 있다. 마치 사람이 모자를 쓴 것처럼 코끼리는 머리에 초꽂이를 올렸다. 모자 앞쪽에는 꽃무늬도 보이고 문양도 있어 멋을 더했다.

세밀한 묘사

촛대의 뒷쪽에는 코끼리의 꼬리가 하늘을 향한다. 귀 부분에는 줄무늬도 새겼고 목에는 장식을 둘렀다. 기다란 코 양쪽에는 코끼리의 이빨이 조각됐다. 코끼리의 상징이자, 귀한 조각재료로 쓰인 상아는 그 크기가 생각보다 작다.

주술 의식과 양초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 인간은 주술 의식에 의미를 뒸다. 의례에는 당연히 초를 밝혀 어둠을 물리치는 행위가 수반된다. 유물 발견 위치가 불교 국가인만큼 코끼리 촛대는 제사 의식에도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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