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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BRI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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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무늬 시전지판
木彫蓮花文詩箋紙板, 길이 15cm, 너비 35cm

책받침에도 멋과 풍류

지금도 사용되는 책받침. 세로쓰기가 보편화된 당시, 줄을 맞추어 글을 가지런히 쓰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실상 고문서나 서적에는 세로줄이 그어져 있고 문자가 적힌 경우가 많다. 줄이 그어진 공책, 칸칸 나뉜 원고지 등과 유사하다. 마치 책받침과 유사한 기능을 했다.

유행, 판화의 시초

시전지판에는 줄을 넣어 시나 편지를 쓰기 편리하게 하는 기능도 했으나 길상(吉祥)을 뜻하는 동물이나 꽃 등의 장식 무늬를 종이에 새기는 역할도 했다. 활자인쇄술이 서적의 보급 속도를 높였듯, 시전지판은 판화로서 아름다운 문양과 그림을 인쇄하듯 찍어낼 수 있었다.

한번에 담는 시서화

시전지판은 그림과 글과 시를 한번에 찍을 수 있는 목판.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좋은 재질의 목재를 선택해서 원하는 도안을 골라 조각칼로 새기면 간단하게 완성, 선조의 지혜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백년을 가는 재질

나무로 제작하는 시전지판은 당연히 재질이 중요했다. 사용되는 나무는 은행나무, 물푸레나무 등이다. 시전지판을 직접 만들기 전, 소금물에 넣고 천천히 말리기를 반복함으로써 오랜 세월을 견디게 했다. 때로는 연꽃무늬, 때로는 매화나 수세미 등을 그려넣고 화사한 느낌을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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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신의 상징...태양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의 가면, 드레스덴 무기박물관

숭배의 대상, 태양

태초 이래 태양은 신의 상징이자, 숭배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왕을 자칭하는 자와 그를 추종하는 이들 모두 태양에 특별한 의미를 뒀다. 빛이 있는 낮, 인간은 활동이 편했고 사냥과 채집이 가능했다. 이후 농경사회에서도 곡물이 자라는 데 있어 태양은 필수불가결. 자연섭리를 넘어선 태양의 존재가 인간에게는 축복이 됐다.

태양가면, 존엄한 존재의 상징

왕, 즉 지배자의 가면은 그 형태조차 따라하기 어려웠다. 특별한 존재가 아니고서는 태양을 본 뜬 가면을 쓸 수 없었다. 지배 계급만이 참석하는 연회장, 왕은 태양가면을 쓰고 귀족 사이를 누볐다. 태양신으로 신격화하면서 지배권력을 분명히 한 뒤, 권력을 강화했다. 강건왕 아우구스투스는 태양가면을 쓰고 자신을 아폴론의 화신이라 칭했다.

이미지의 힘

프랑스 루이 14세를 동경했던 강건왕. 그는 자신의 롤모델처럼 태양신이 되고 싶었다. 절대자의 이미지를 피지배층에게 심어주려 그는 숭배의 대상인 태양을 이용했다. 비록 순금 가면이 아니지만, 귀한 금으로 도금함으로써 태양 이미지를 형상했다.

신들의 행렬

1709년 폴란드 왕으로 돌아온 아우구스투스. 당시 이를 축하하려 신들의 행렬이란 행사가 열렸고 강건왕은 아폴론으로 변신했다. 가면은 물론, 익명의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자신이 되고 싶은 존재로 변하게 하는 매개체이자, 주변 이들에게 본인의 이미지를 각인하고 싶은 욕구를 담고 있다. 존귀한 신분임과 동시에 태양가면까지 쓴 아우구스투스에게 만인은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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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전도
여필 박정설 1661년 필사 | 보물 제1008호

둥근 지구와 세계지도

지도는 선교사 알레니가 1623년 편찬한 한문판 휴대용 세계지리서 직방외기(職方外紀)에 실린 만국전도를 민간에서 확대 필사한 세계지도.

과학적 증명

옛 사람은 지구가 네모난 모양으로 그 끝에 벼랑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지식인이 월식 현상, 수평선과 지평선에서 사물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관찰하고 지구가 둥근 공의 형태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천원지방(?)

동양 역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라는 천원지방의 믿음이 강했다. 하지만 유럽의 대항해시대를 거쳐 세계 일주가 가능함에 따라 지구가 둥글다는 과학 증명이 더욱 쉬워졌다.

완성된 세계일주

포르투갈에서 태어난 페르디난드 마젤란은 세계 최초로 세계일주를 성공해서 유명하게 됐다. 그는 스페인 국왕의 지원으로 세계일주에 나섰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 그 믿음은 세계일주의 초석이 됐고 마젤란 사후에도 지속된 항해가 세계일주를 완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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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파정, 풍류 정자
석파정도 병풍 이한철 조선 1860년 |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

뛰어난 정경

고종황제의 아버지, 운현궁의 주인 흥선대원군은 현재의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에 위치한 석파정을 차지한다. 사저를 빼앗을 정도로 경치가 빼어난 석파정. 현재까지도 보존상태가 좋다.

왕이 머문 장소

원래 석파정의 주인은 김흥근. 그는 1825년 순조 임금 때 벼슬에 나아가 훗날 영의정까지 지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그의 별장에 욕심을 냈고 결국 아들인 고종황제를 이용해 김흥근의 별장을 차지한다. 고종과 함께 그의 별장에서 하룻밤을 묵었고 신하가 임금이 묵은 곳을 소유한다는 게 예법에 어긋나 그의 별장은 흥선대원군에게 넘어간다.

왕권을 둘러싼 갈등

석파정은 별장에 딸린 정자로, 그 일대의 경치는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흥선대원군의 섭정을 우려했던 김흥근, 그는 당연히 눈 밖에 나게 되어 그의 사저를 강제적으로 빼앗긴다.

풍류 정자

석파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호이기도 한데, 그가 석파정을 얼마나 아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구한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흥선대원군은 바위와 물과 산이 어울린 이곳에서 잠시나마 풍류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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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무쌍
삼국지도 6폭 병풍(三國志圖六幅屛風)

리더와 참모

유명한 왕, 황제의 뒤에는 언제나 유능한 참모가 존재한다. 유방과 한신, 유비와 제갈량, 정조와 정약용 등 그 예는 많다. 국사무쌍(國士無雙)이란 두 명이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인재를 지칭한다. 국사무쌍처럼 역할은 각기 달랐지만, 수세를 공세로 돌리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그릇됨을 바르게 했던 능력과 인성이 그들의 핵심에 있다.

유형, 그들을 나누다

5천만명에 달하는 대한민국의 인구. 이 모든 사람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면 어떨까.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에는 수백명에 달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각기 다른 특징과 능력을 지녔던 그들은 과연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될까. 중요한 건, 유형의 숫자가 아니라 어디에 속하는지에 있다.

실상 한정된 사람만 접한다

주변 인물의 정확한 분류가 가능하다면 현명한 판단이 수월하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뛰어난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은 용병술 하나로 족하다. 한신과 비슷한 사람, 정약용과 같은 인물을 찾는 일이 쉬워질 수 있다. 실상 우리가 한평생 만나는 사람의 숫자는 한정된다. 그들을 분류하는 일이란 그리 수고롭지 않을 수 있다.

역사서와 사람 비교하기

비단 삼국지뿐 아니라,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등의 역사서에는 다양한 인물과 그에 얽힌 일화가 기록됐다. 지금과 다른 시대에 살았고 다른 사고방식을 지녔던 그들과 우리 주변의 인물을 비교한다는 건 타당한 일이 아닐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과 그 사건을 대하는 주변 사람의 행동을 살필 때, 그들은 때로 소설이나 역사서에 등장하는 이들의 행동을 닮았다. 이유는 아마도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했으나 같은 역사가 반복되기 때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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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거대 제국 | 안장과 등자
몽골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초거대 제국을 거설했다. 유목 민족으로 알려진 그들의 기마술은 전쟁에서 승리를 안겨줬다.

광활한 초원

광활한 초원을 내달리며 유럽과 아시아를 넘나들던 그들은 주변 민족에게 마치 악마와 같은 모습으로 보이며 무릎을 꿇어야 했다.

칭기스 칸

그들에게 가장 유명한 통치자 칭기스 칸은 주변 부족을 통일하며 힘을 하나로 규합함으로써 거대 제국을 건설했다. 자국민에게는 영웅이자 국부, 주변 민족에게는 침탈자이자 악마로 묘사된 그는 중국은 물론 러시아, 현재의 이란, 카자흐스탄, 터키까지도 영역을 확대했다.

전쟁에서 이긴 몽골군

전쟁에서 이긴 몽골군은 병사의 약탈을 좌시하는 경우도 있었기에 싸움에서 진 국가의 통치자와 그 일가족은 백성과 함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기도 했다.

유리한 전술

현대의 전쟁에서도 신무기의 등장이 승패를 좌우하듯 말을 다루는 기술에서 최고였던 몽골군은 지형을 이용해 유리한 전술을 펼쳤고 전차부대와 같던 그들에게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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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복, 지위의 상징
아우구스투스의 군복, 드레스덴 무기박물관

절대적 존재는 자신을 꾸민다

신과 인간의 경계를 명확하게 그어야 했던 과거의 지배자들. 자신을 신의 후예 혹은 신과 동일시하게 만들 필요는 분명했다. 용과 같은 환상의 동물은 물론, 상서로운 짐승을 자신의 상징으로 삼거나 그 대상이 갖는 이미지를 이용했다. 의복은 그 대상으로 적합했다.

전쟁의 패배자, 복위를 꿈꾸다

스웨덴과 전쟁에서 패한 아우구스투스. 왕위를 잃은 그는 폴란드 왕으로 돌아가려 애썼다. 전쟁에서 지고 군복과 마차조차 일반 병사들에게 빼앗긴 강건왕. 이 같은 굴욕을 견디고 다시 제작을 지시한 군복은 지극히 화려하다. 금실로 자수를 놓아 마련한 군복는 실전용이 아닌, 의례용. 왼쪽 가슴 부위, 즉 심장 위치에는 십자가를 새겼다. 그 주위를 태양 문양이 둘러싼다.

군인에게 계급은 생명

군대조직에 있어 계급은 생명. 지위계통이 분명하지 않으면 전쟁에서 이기기 어렵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쟁, 명령은 절대적이고 계급은 그 원천이 된다. 왕과 장군의 작전을 충실하게 따라야 했던 과거 백성들. 나무 방패와 허술한 창, 낡은 총, 때로는 농사기구로 무기를 대신해야 했던 피지배층, 그들에게 군복은 사치에 불과했다. 자연스레 계급장과 위엄 서린 군복은 명령을 이행케 하는 힘을 지녔다.

전쟁무기와 의복, 문명수준의 잣대

전쟁은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이래 존재했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짐승의 대결은 때로 문명을 발전케 하는 과정이 되기도 했다. 돌과 나무, 짐승의 뼈 등을 무기로 사용하던 시대를 지나 청동기과 철기 시대를 거치며 전쟁의 역사는 발전했다. 화약이 등장하고 공성 무기가 개발되며 살상의 위력은 양과 질적인 면에서 속도를 더한다. 승전 뒤, 전리품의 분배와 연회가 의장용 무기와 의례용 의복의 존재 이유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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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랑에 빠진 임금과 선비
책가도(冊架圖), 책거리(冊巨里), 병풍(屛風)

서재 그렸나(?)

시(詩)와 서(書)와 화(畫)에 능해야 했던 과거 선비. 그들은 책을 가까이 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났다. 자연스레 책 사랑은 그림으로 이어져 병풍이 됐다. 대개 양반집은 병풍에 매난국죽(梅蘭菊竹)이나 모란 등을 그렸으나 기품을 살리려 학식 높은 선비는 책가도를 선호했다.

등장인물은 책만 있나

책가도에는 서적뿐 아니라 도자기와 벼루, 먹 등 문방사우(文房四友)도 같이 그려졌다. 책가도의 특징은 원근감이 느껴진다는 데 있다. 정면에서 본 모습을 2차원으로 그리지 않고 입체감을 살렸다. 몇 권의 책이 쌓였는지도 알 수 있으며 책이 놓인 선반의 깊이마저 그림에서 드러난다.

알고보면 임금사랑

책가도의 가치가 유독 높은 이유는 그 시초에 있다. 조선왕조의 역대 임금 가운데 인기가 높은 정조(正祖)가 책가도 사랑에 빠졌다. 무신정권으로 탄생한 조선은 후기로 갈수록 문치주의를 강조했다. 지방 군권을 견제하고 제어해야 했던 임금은 신하들에게 무용보다 학식을 강조했다.

귀족계급의 전유물에서 탈피

19세기에는 책가도가 일반 백성에게 퍼졌다. 글(文)이란 지배계급의 전유물로 여겨졌으나 책가도는 민화로 제작되어 퍼졌다. 궁중화풍에서 벗어난 책가도, 자유분방한 기법으로 다양한 책가도가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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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들, '배그' 한판 아니 '바둑' 한판 어떠한가.
바둑에 빠진 풍류객

바둑, 시기조차 알기 어려운 고전놀이

바둑의 기원은 고대 중국으로 거슬러 올라가나 처음 시작된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우리나라에는 5~7세기경 전해졌다고 추정된다. 한국, 대만,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 널리 퍼진 게임은 오늘날에도 그 놀이객이 끊이지 않는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배틀그라운드나 스타크래프트와 같이 옛 선비는 바둑으로 여가를 즐겼다.

체스 뛰어넘은 AI, 바둑까지 점령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시기. 인공지능(AI)은 체스를 정복하고 바둑까지 점령중이다. 수많은 수가 존재하고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예측력과 순간의 기지까지 필요한 바둑에서 AI는 이미 고수의 자리에 올랐다. 바둑 고수 '알파고'에게 풍류객의 이름을 부여하는 건 당연지사.

바둑 인기, 알파고 돌풍은 일시적(?)

개인용 컴퓨터가 흔하고 스마트폰이 필수품이 된 시대. 젊은 학생들은 바둑이나 장기보다 비디오 게임과 온라인 게임에 열광한다. 바둑과 같이 전술, 전략을 다투는 종류의 게임이 수천가지에 이르는 시대, 선택의 폭이 넓어진 풍류객에겐 바둑은 낯설기까지 하다.

프로게이머는 현대판 풍류객

풍류를 즐기며 동무들과 바둑에 몰두했던 옛 선조들. 요즘 젊은이들이 즐기는 유명 게임도 그 기호 원인은 같지 않을까. 하나 사고의 깊이를 겨루는 온라인 게임, 비디오 게임을 굳이 바둑에 비유한다면 자못 비난이 쏟아질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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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시오, 호패 좀 봅시다.
조선시대 신분증명, 호패 | 문화재청

과거의 주민등록증

과거 조선시대는 호패법이 시행됐다. 신분을 증명하는 수단으로써 16세 이상 남자는 호패를 차고 다녀야 했다. 오늘날보다 제도의 시행 적용 나이가 어린데 조혼이 성행했던 조선시대인지라 이상하지 않다. 유명한 고전 로맨스 '춘향전', 그 주인공의 나이도 이팔청춘이었다.

역시나 남존여비

출타할 경우 여인들이 얼굴도 가려야 했던 시기, 호패는 역시나 남자의 전유물. 앞면에는 이름과 직함, 관직 진출 시기와 출생연도가 기재됐다. 고려시대부터 이어진 제도로 호패는 신분계층별로 재질과 기록 내용이 달랐다. 호패법의 시행 목적이 군역에 있었기에 백성의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제도.

위조방지 골몰

호패제도로 군역에 시달렸던 백성은 이를 피하려 양반의 노비로 자청해서 들어가거나 호패를 위조 또는 교환하는 불법행위를 자행했다. 요즘도 군대에 가지 않으려 하는 젊은이가 많은 것처럼 당시에도 이와 비슷한 꼼수가 존재했다. 호패를 지니지 않을 경우 엄벌에 처하는 규정이 있었으나 제도의 완벽한 시행이 어려웠다.

고급재질부터 잡목까지

죽어서야 반납이 가능했던 호패, 귀족은 상아 혹은 녹각으로 이를 만들었다. 이외에도 자작목, 황양목 등이 쓰였다. 신분계급이 낮은 백성은 기타 잡목을 사용했다. 인구를 파악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부역에 이용됐던 호패제도는 실효성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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