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도심의 조화로 대표되는 신도(新都) 세종, 그 매력이 푸릇푸릇 녹색이라면 옛 정취가 묻어나는 서울, 고도(古都)의 색은 가을빛입니다. 왕조(王朝)의 기억이 담긴 고궁, 생각이 복잡할 때 이보다 좋은 산책로가 없습니다. 선조들이 걸었던 길과 그 길을 따라 펼쳐지는 광경은 수백 년 세월이 흘렀어도 변할 줄 모릅니다. MEDIA N 과 함께 고도의 기억을 공유해 보시죠. Created by MEDIA N | IMGⓒ :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 National Museum of Korea |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Take a walk
A great city is a great desert?
옛 조상들은 임금과 신하를 물과 물고기에 비유했죠. 어진 임금과 현명한 신하가 만나면 백성이 편안하다는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해서 고궁에는 연못을 조성하고 물고기 조각상을 배치하기도 했죠. 어수당(魚水堂)과 부용지(芙蓉地) 등이 대표적인 장소입니다. 모두 창덕궁 후원에 있으며 어수당은 현재 그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부용지는 여전합니다. 우주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 외국도 마찬가지이지만 하늘과 땅은 숭배의 대상이었습니다.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사상을 바탕으로 꾸며졌다는 부용지(芙蓉地). 그곳에는 땅을 형상화한 연못과 하늘을 닮은 둥근 섬이 있습니다. 부용은 불가에서 중시하는 연꽃을 의미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광경으로 꼽히는 장소이기도 한데, 특히 가을 단풍이 지면 그 모습이 풍류와 운치를 아는 이들의 눈길을 끌죠.
창덕궁 후원에는 연경당(演慶堂)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무려 120칸이나 되는 가옥이죠. 오랜 옛날 지금의 건폐율, 혹은 연면적처럼 양반들의 가옥 크기는 99칸으로 제한했습니다. 임금만이 100칸 이상의 가옥에서 살 수 있었죠. 칸이란 기둥과 기둥 사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정확한 넓이의 도량형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가령 건축물의 가로에 기둥이 5개라면 4칸이 되고 세로에 3개라면 2칸이 됩니다. 결국 4와 2의 곱으로 해당 건물은 8칸이라 합니다. 여분 없이 99칸 딱 맞추어 집을 지었다면 조금은 불경스러운 양반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찌됐건, 연경당은 22세로 절명한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의 덕을 기리기 위해 지었습니다. 임금이 승하하면 생전의 업적을 치하하려는 목적으로 칭호를 정하는 추봉(追封)을 했습니다. 효명세자는 명칭에서부터 알 수 있듯 생전에 왕으로 오르지 못하고 세자 시절 순조를 대신해 왕권을 펼치다 4년 만에 병사했습니다. 그 뒤로 조선왕조는 연이어 후사가 없는 바람에 왕위 계승 순서가 왕족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결국 아들 헌종 이후로 먼 친척이 되는 철종이 왕위를 계승하고 다시금 먼 친척에 해당하는 고종에게까지 왕권이 이르게 되었죠.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 이후 직계로만 왕권이 넘어간 게 아니지만 조선 후기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졌습니다.
희정당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다양하게 사용됐습니다. 때로는 침실, 때로는 집무실, 외국 사신을 맞는 장소로도 이용했죠. 보수하는 과정에서 서양식 건축 방법이 적용되며 다른 건축물과 상이한 모습을 보입니다. 내부 장식물 역시 구한말 외국 문물이 국내에 유입된 흔적을 찾아 볼 수 있게 합니다. 2인 이상이 앉을 수 있는 의자부터 내부에 놓인 가구는 서양식입니다.
왕궁은 외전과 내전, 편전, 침전 등으로 나뉘는데 외전은 말 그대로 공식적인 대외 행사가 이뤄집니다. 내전은 왕실 가족 구성원의 생활 구역이죠. 편전은 집무실의 역할을 합니다. 침전은 일반인들의 침실에 해당하죠. 희정당은 창덕궁의 내전이었으나 조선 후기에는 편전으로 사용됩니다.
창덕궁에 들려면 돈화문(敦化門, 보물 제383호)을 지나야 합니다. 긴 칼을 옆에 찬 수문장과 왕궁의 위엄을 상징하는 거대한 문이 산책의 첫걸음이죠. 유교의 나라답게 돈화란 명칭으로 공자의 덕을 기립니다. 1412년에 지어졌다 하니 반세기 역사를 지켜본 문화재로 손색이 없죠. 아시다시피, 옛 나라는 왕도(王道)와 어문(御門)을 구분했습니다. 임금과 고관대작만 이용했다는 문이 우리 앞에 열려 있습니다.
돈화문 2층에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있습니다. 옛 선조는 하루를 24시간이 아닌, 100각으로 나눴습니다. 전기가 없던 시절, 낮을 만드는 태양의 존재는 귀하다 못해 숭배의 대상이 됐죠. 그러기에 일출과 일몰 시각이 우리의 일과를 조절했습니다. 여기서 선조들은 일출과 일몰 전후를 5각으로 잡고 그 사이의 밤 시간을 5등분한 뒤 1경, 2경, 3경, 4경, 5경으로 정했습니다. 1경은 다시금 5등분으로 나눠 각각을 점이라 했습니다. 이런 시간제를 경점법(更點法)이라 합니다. 돈화문은 정오(正午)와 인정(人定, 1경 3점), 파루(罷漏, 5경 3점)에 북과 종으로 시간을 알렸습니다. 즉, 해가 지고 나서 통행금지와 해제를 알리는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기록에는 인정에 종을 28번 쳤고 파루에는 종을 33번 울렸다고 전해집니다.
궁궐에서는 때로 성대한 잔치가 열렸습니다. 임금 혹은 선왕, 대왕대비 등이 천수를 누릴 때 그 기념을 했습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의학과 보건, 위생 지식이 부족했기에 백성은 여러 질병에 시달려야 했죠. 임금과 귀족 계층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긴 수명을 누렸으나 권력 다툼과 독살, 원인이 불분명한 질병으로 단명한 이들도 있습니다. 단종, 연산군, 소현세자, 사도세자, 효장세자, 효명세자 등이 짧은 생애를 살았습니다. 궁궐에서 열린 연회, MEDIA N 과 함께 당시 장면을 살펴 보시죠!!
기축년 궁중잔치
순조어극 30년
진찬도
1829년(순조 29) 2월에 거행된 궁중연회. 순조의 등극 30년을 기념하는 진찬도입니다. 연회에 참여한 대왕대비와 왕대비, 문을 지키는 병졸, 악공, 왕세자의 소차(小次)와 정문으로 가는 길, 상을 나르고 술잔을 올리는 차비(差備) 등 궁중 연회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궁중 행사도
조선시대 궁중 잔치 그림의 일부입니다. 현재까지 어떤 행사를 기록한 것인지 확인되지 않습니다. 단이 설치됐고 그 위에 녹색 단령을 착용한 사람들이 좌우측으로 앉아 있습니다. 머리에 꽃을 꽂았으며 앞에 놓인 상에도 꽃이 있습니다. 악사들은 단 위, 아래에는 처용무 복장의 무용수들이 있죠. 단 아래 좌우에는 무관들과 의장물을 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담장 근처에는 가마와 백마를 몰고 가는 이들이 보입니다.
흔히 사무실에는 칸막이가 존재합니다. 집중력을 높이고 업무를 편하게 하는 역할을 하죠. 때로는 부서를 나누거나 잡동사니를 가리는 용도로 사용합니다. 과거에는 어땠을까요. 우리 선조는 칸막이 대신에 병풍을 사용했죠. 멋진 문양과 서정적인 시를 담아 풍류를 논했습니다. 동양의 독특한 문화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병풍에 관해 MEDIA N 이 알아봤습니다. Created by MEDIA N | IMGⓒ : National Museum of Korea |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Sentimental Journey
Deviation from Nature is deviation from happiness
Message in fold-screen
A picture is worth a thousand words
대개 병풍을 접하는 장소는 고관대작의 방 또는 제사를 치르는 곳입니다. 보통 짝수로 병풍을 만들지만 하나로 된 통병풍도 있습니다. 폴딩 스크린(folding screen), 폴딩 도어(door)처럼 벽이나 경계를 대신하는 역할에 적합합니다. 바탕이 되는 그림은 다양하죠.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이 그려지거나 수를 놓아 앞면을 장식합니다. 뒷면에는 글을 적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외에도 유명한 절경과 상상 속 공간이 병풍에 펼쳐지기도 합니다. 연결됨으로써 폭이 넓어짐에 따라 담을 수 있는 그림의 제약이 줄어들죠.
사용처도 다양합니다. 방안을 장식하는 가구의 역할도 하고 때로는 바람을 막아주죠. 또한 소유자가 중시하는 글이나 사상을 강조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합니다. 옛 성현의 가르침을 병풍에 담고 고사에 얽힌 장면을 상상력을 동원해 표현하기도 합니다. 왕의 행차, 기념일 등 역사적인 장면을 그려내기도 하죠. 닮고 싶은 동물이나 식물을 화폭에 담기도 합니다. 현대에는 액자로 벽면을 장식하지만 과거에는 병풍이 이를 대신했죠. 풍류가 넘치고 멋스러운 방법입니다. 용도의 다양성은 병풍의 또 다른 장점이죠.
Circumstances are instruments of the wise
때로 침묵은 금과 같고,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습니다. 옷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여러분을 둘러싼 환경이 상대에게 선입견을 부여합니다. 주체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주변에 반영하겠죠. 병풍을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보죠.
병풍의 심리적 풀이는 이렇습니다. 무언가 자신의 뒤에 두고 마주 앉은 사람이 바라보게 한다는 건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책상에 가족의 사진을 놓거나 좌우명 같은 것을 자주 보이는 장소에 두는 일과 유사합니다. 뒤쪽에 놓인 병풍에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자세와 가치관, 무엇을 중시하는지를 표현하죠. 본인의 지위와 위엄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두 객(客)에게 전하는 무언의 의사입니다.
병풍에 전달되는 의사표현, 그 의미를 알면 상대방을 이해하기가 쉬워지죠. 협상을 할 때나,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할 때, 혹은 부탁을 할 경우가 생기는 경우 상대방의 주변을 살펴보도록 하시죠. 장해물을 없앨 해답이 존재할지 모르니까요. 해답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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